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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해피 클리너스'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대학을 마친 큰 딸이 딴 일을 하고 있어 왜 그러냐고 물었다. "지난 몇 해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헤어질 때 마다 이별 카드 적어서 주고, 껴안고 울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제 나눌 수 있는 내 마음이 바닥났어요. 다른 일 좀 하면서 다시 채우고 아이들 만나려고요."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그럴 듯도 했다. 늘 엄마 같다고 생각한 큰 딸이라 더 그랬다. 그리고 내 마음도 바닥난 것 아닌지 멍해졌다. 그런데 마침 엊그저께 플러싱타운홀에서 영화 '해피 클리너스'를 봤다. 나도 서른 해 가까이 살아온 플러싱 낯 익은 길과 쉼터 그리고 일터. 어눌한 영어를 하며 힘든 삶을 이어 가는 어머니와 아버지. 이들에게 서투른 우리말로 때로는 대들지만 도우려고 애쓰는 아들과 딸. '후러싱' 교회와 머레이힐 기차역, "돈이 없어서 이런 동네 공원에서 데이트한다"는 영화 안 말처럼 너도나도 '데이트'를 했던 그곳들. 쥐어 짜지 않아도 저절로 웃고, 눈물이 나는 우리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빼곡히 차 올랐다. 플러싱에서 자란 두 젊은이, 줄리안 김과 피터 이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다. 독립영화란 많은 돈 못 들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영화를 멋있게 부르는 말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하지만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가득 찬 타운홀에서 이들은 천둥 같은 손뼉 소리를 들었다. 가슴이 벅찼고 우리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느끼게 해줬다. 나에겐 더욱 그랬다. 뉴욕중앙일보는 '커뮤니티 신문'이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신문이란 돈 많이 못 들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신문을 멋있게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싸우고 지켜내야 할 것들, 꼭 알아야 할 것들, 그리고 이웃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에 값지다. 고달프게 독립영화를 만들 듯, 커뮤니티 신문을 만드는 일도 만만하지 않다. 힘이 들어서 때로는 마음이 바닥난다. 하지만 '해피 클리너스'를 본 사람들처럼 커뮤니티 신문에도 글을 읽는 사람들이 힘을 보탠다. 이민법 규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더 알고 싶어서, 도움을 받으려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답답한 일을 겪었는데 어찌해야 하는지, 아무개가 신문에 나왔다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려야 할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하는지 묻는다. 좋은 글과 사진에 고맙다고 손뼉도 쳐준다. 그래서 가끔씩 바닥나는 가슴을 다시 채워준다. '해피 클리너스'에 쏟아진 손뼉 소리가 마치 우리 커뮤니티에 더 많이 힘써달라는 북돋움 같았다. 커뮤니티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모두 같은 느낌을 받았으리라 여겨진다. 그래서 많이 고마웠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8-18

[데스크 칼럼] '백인 우월주의'와 테러

지난달 연방수사국(FBI)은 의회 청문회에서 지난해 10월 뒤 붙잡은 미국 안 테러리스트는 거의 모두 다 '백인 우월주의'와 얽혀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백인 우월주의' 테러리스트를 가려내는 일에 앞서 나서지 않는 까닭을 묻자 "아무리 역겨운 것이라도 '사상' 자체를 수사하지 않으며, '사상'과 상관 없이 국내 테러나 혐오범죄를 극도로 심각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레이 국장은 미국에 사는 사람이 '지하디스트(이슬람 극단주의 무장투쟁 조직)'를 믿는 '자생적 폭력 극단주의'는 국제 테러로 나눈다고 했다. '사상'에 대한 서로 다른 잣대다. 지하디스트는 따로 살펴야 할 사상이고 백인 우월주의는 아니다. 아니다 다를까 백인 우월주의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 3일 텍사스 총격 사건에 백악관 믹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은 같은 말솜씨를 보였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우월주의를 부추기고 있다는 데 맞서 총격 용의자들은 '미친 사람들'이고 '정치'가 아니라 '사회' 문제라고 풀이했다. 그들이 미친 것은 맞지만 백인 우월주의 '사상'이나 '정치'에 애써 손 사래질을 하는 꼴에 속이 거북하다. 미국에 있는 지하디스트를 샅샅이 찾아내 모조리 잡아야 하듯이, 백인 우월주의도 똑같이 다뤄야 하는데 그럴 뜻이 없다.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이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들이니 오죽이나 하겠나. 백인 우월주의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너무 부드럽게 만든 잘못된 말이다. 지하디스트와 똑같은 극단주의이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피'를 부른다. 이민자와 유색인종에게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힘줘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두 미쳤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건 맞다. 그래서 FBI 국장과 백악관 비서실장의 말은 틀렸다. 그들이 틀렸다는 건 끝없이 늘어나는 '백색 테러'가 보여준다. 총기 규제는 두 말할 것도 없다. 텍사스 사건 뒤 바로 어머니들이 백악관과 의사당 앞으로 몰려갔다. 마침 가까운 곳에서 모임을 하고 있던 단체 'Moms Demand Action'은 텍사스 얘기를 듣고 바로 일어섰다. 그리고 백악관과 의회가 '비겁'하다고 시원하게 욕했다. 마침 트럼프는 총격 사건이 "비겁한 행위"라고 트윗을 날렸는데 화살은 그에게 되돌아갔다. 미국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도려내고 총기를 막는 일은 하나다. 그리고 아무리 소리 질러도 대통령과 의회가 오늘날 이 꼴이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갈 수 없다. 그래서 2020년엔 '다 바꿔'야 한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8-04

[데스크 칼럼] "우리는 떠나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시내에 나갔다가 길에서 봉변을 당했다. 구걸을 하는 사람이 앞을 가로막길래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더니, 뒤에서 내 뒤통수를 향해 큰소리로 '중국 X년아, 중국으로 돌아가!(Chinese bitch! Go back to China!)'라고 외쳤다. 아직 해도 지지 않은 맨하튼 한복판에서…. 대통령이라는 작자부터 노골적으로 인종 혐오, 이민자 혐오를 조장해대니, 이제 대놓고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분위기로 가는구나. 오늘은 언어폭력으로 그쳤지만, 다음에 테러를 당할 수도 있겠다 싶다. 이거 정말 위험하다. 싸워서 막지 않으면 역사의 비극이 되풀이 될 거다. 옆에 있던 아이가 더 당황했을 거 같은데, 도리어 침착하게 내 팔을 꼭 잡으며 '엄마, 무시해. 엄마는 이 먼 나라까지 혼자서 온 용감한 사람이야'라며 나를 위로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광기를 막아야 한다." (남수경 변호사) "1년여 전이었다. 팰리세이즈파크 타운 미팅에서 재산세 문제를 다른 타운과 비교하며 듀플렉스 건축으로 몇 배로 자동 증액되는 세원이 많은데 왜 인상되냐고 질의하자 한 백인이 '코리안들은 팰팍이 싫으면 다른 타운으로 이사를 가라'는 발언을 했다. 2개월에 걸쳐 강력히 시정을 요구하고 타운 미팅 공식 발언대에서 사과를 받고 난 후부터 그가 한인을 대하는데 신중해졌다." (권혁만 팰팍한인유권자협의회 회장)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대통령의 말에 '허드 투(Heard Too.나도 그런 말을 들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민자 가운데 이런 말 듣지 못해본 사람이 드물 터이다. "이 나라가 싫으면 떠나라"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생각 좀 하라고 꾸지람을 해야 한다. 옛날 한국에서는 군사독재에 맞서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한국이 싫으면 북한에 가서 살아라."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피땀 흘려 독재를 무너뜨렸다. "떠나라"는 말은 다르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파시즘'이다.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잘못된 점을 밝히려 하는 데 "이 나라를 싫어하니 떠나라"고 한다면 그건 막말을 넘어선 '언어폭력'이다. 더구나 이민자와 이민자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더 나쁜 짓이다. "다른 곳에서 굴러들어온 너희들을 쫓아 내고 싶다"는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속마음'을 밝히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민자들은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생각이다. 서로 업신여기지 않고, 더 고르고, 더 올바르고, 더 많이 나누는 그런 미국을 만들고야 말 것이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7-21

[데스크 칼럼] 메건 래피노의 월드컵 우승

아침 스포츠 라디오 방송에서 말다툼이 일었다. 미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 청취자가 몹시 못마땅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질 때 손을 가슴에 얹지 않는 반애국적인 선수를 왜 먼저 내보내나. 그를 앉혀뒀다가 나중에 뛰게 하면 되지 않나. 나라를 지키는 데 몸바친 참전군인들을, 나라를 깔보는 선수와 감독이 믿어지지 않는다." 대표팀 공격수 메건 래피노에 대한 '욕'이었다. 그는 국가가 나올 때 가슴에 손을 얹지 않은 지 오래다. 미프로풋볼 선수였던 콜린 캐퍼닉이 무릎을 꿇었던 것과 같은 까닭이다. 성.인종 차별로 얼룩진 미국이 바뀌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들은 반애국적이라는 욕을 먹는다. 잠시 뒤 다른 청취자가 또 못마땅해서 전화를 했다. 그런데 말은 달랐다. "나는 참전군인 출신 흑인이다. 래피노가 하는 행동이 바로 애국이다. 보다 평등한 나라를 바라는 게 왜 말썽인가. 참전군인들을 모욕한다고? 나는 그가 더 자랑스럽다." 백인 여성 진행자는 약삭빠르게 말다툼에 말려들지 않았다. 다만 흑인 참전군인들이 더 크게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래피노는 올해 월드컵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여성 혐오.인종차별주의자'라고 대놓고 몰아세웠다. 월드컵 우승을 하고 백악관이 불러도 "나는 우라질 백악관에 안 간다"고 했다. 그런 그를 '애국' 타령을 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리는 없다. 그런데 묻고 싶은 게 있다. 손을 가슴에 얹지 않고, 무릎을 꿇는 게 왜 나라를 깔보는 것인지. "나라를 깔보기 위해 이렇게 한다"고 말한 사람도 없다. 그들은 그냥 차별에 맞서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린 아직도 차별이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 없어져야 할 차별이 있다는 데 애써 눈을 감으려는 사람들의 억지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억지 부리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내려진 손과 굽힌 무릎에 손뼉을 친다. 방송이 끝난 뒤 미국 대표팀은 우승을 했다. 4번째 월드컵 우승이다. 올해 34살인 래피노는 이번 월드컵에서 주장을 맡았고, 5경기.428분을 뛰며 6골을 넣고 3개의 도움주기를 일궈냈다. 결승전에서도 페널티킥을 차 넣고, 최우수선수상인 '골든볼'과 득점왕 '골든부츠'를 받았다. 정말 감독도 팀도 미쳤나 보다. 대통령에게 막말을 하는 반애국적인 선수를 국가가 울려 퍼질 때 내보내고, 페널티킥도 차게 하고, 마무리엔 온갖 값진 상도 휩쓸게 했다.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이 미치게 좋은 날이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7-07

[데스크 칼럼] '전쟁과 평화' 그리고 트럼프

지난달 민주당 대선 후보 1차 토론회. '같은 말 서로 다르게 하기'로 줄곧 갑갑했던 가운데 아주 잠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털시 개버드 하와이주 연방하원의원이 베풀어 준 아주 짧은 겨를이었다. 이라크전 참전군인 '벼슬'이 있는 개버드는 흔치 않게 해외주둔에 맞서는 사람이다. 그는 미국이 다른 나라의 일에 끼어들어야 하는 지에 대한 얘기 가운데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미군들을 모두 불러들여야 한다"고 서슴지 않고 말했다. 그는 요즘 이란과의 다툼에 대해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전쟁에 미친 내각이 우리를 전쟁 코 앞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걱정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도 '핵전쟁'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얼굴도 잘 모르는 개버드가 다음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짬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이민' '건강보험' '기후변화' '빈부격차' '학자금 빚' '낙태' '동성애'를 비롯한 여러 얘기 속에 묻혀 빛을 내지 못하는 '전쟁' 이야기를 뿜어내는 알찬 후보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펼쳐지는 '다른 나라 정권 교체' 정책에 꽤 오래 맞서왔다. 미국이 껴들기를 한 나라 가운데 더 좋아진 곳이 없다는 참말을 하는 드문 정치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토론회에서 개버드의 쓴 소리를 들은 팀 라이언 오하이오주 연방하원의원은 "꼭 트럼프의 말을 듣는 것 같다"고 맞받아 쳤다. 어처구니가 없다. 언제부터 트럼프가 '비둘기'가 됐나. 트럼프는 개버드의 말처럼 다른 나라와의 일을 다루는 자리에 '전쟁에 미친 사람들'을 잔뜩 앉혔다. 그리고 나라 안에서 '인종.이민.성.소득 계층 전쟁'을 일삼고 있다. 밖으로는 이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예멘을 비롯 곳곳에서 전쟁의 불을 지피고 있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유럽 나라들과 함께 이룬 이란과의 합의를 홀로 깼고, 이스라엘만 감싸면서 팔레스타인과의 다툼을 부추기고 있다. 연방의회에서 보낸 '예맨 내전 개입 중단 결의안'도 내던졌다. 전쟁에 피눈물을 삼키는 난민들을 나 몰라라 하고, 전쟁으로 배를 불리는 군수업체들의 '외판원' 노릇을 위해 우리가 낸 세금으로 온 누리를 날라 다니고 있다. 그리고 기후협약에서 홀로 빠져나오면서 지구를 '환경 파괴 전쟁'으로 내몰고 있다. 그런데 그가 몇몇 나라에서 떠나겠다고 으름장 놓고, DMZ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손을 잡았다고 '비둘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속내가 어떻던 북한이 핵무기를 내치고, 한반도에 평화가 깃드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리 저리 둘러봐도 트럼프는 여전히 우리가 아는 그 '트럼프'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6-30

[데스크 칼럼] 5·18과 민권운동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1일 뉴욕에서도 열렸다. 올해로 서른 아홉 해를 맞았다.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아래 열리던 기념식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 집권 정당 대표와 총영사, 평통 회장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옛날에는 5.18 기념식에만 가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걸렸다. 미국에서 해마다 기념식을 열었던 단체 회원이었던 탓에 한국으로 돌아간 뒤 잡혀서 갇힌 이도 있었다. 이제 그런 일은 없다. 1981년 뉴욕에서 처음 열렸던 기념식 사회를 맡았던 최한규씨도 이날 왔다. 그는 이제 70이 훌쩍 넘어 은퇴를 했다. 그는 첫 기념식에서 사회를 본 탓에 오랜 기간 욕을 먹었다고 한다. 이젠 그다지 욕도 먹지 않는다. 많이 달라졌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기념식을 마무리하며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눈시울은 서른 아홉 해가 지났어도 뜨겁다. 1980년대 욕을 먹던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그 뿌리는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그리고 이제 큰 나무가 돼 한인사회 민권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5.18 대동정신을 이어받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제대로 살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 거의 모두가 1세였던 그들은 이제 1.5세, 2세들까지 함께 아우르며 반이민 정책에 맞서고, 선거 참여운동 등을 통해 정치력을 키우고, 어려운 한인들을 돕는 봉사를 하고 있다. 5.18이 미국 땅에 남긴 열매다. 그렇다고 이들이 '어머니의 땅'을 잊은 것은 아니다. 최한규씨는 지난 4월 27일 맨해튼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손잡기 뉴욕대회'에서 옛날에 함께 일했던 단체 출신들을 30여 명이나 만났다고 했다. 물론 그날 대회를 이끌었던 사람들 가운데에도 같은 뿌리에서 자란 한인들이 있다. 5.18은 한인사회에도 이렇게 큰 힘을 줬다. 올해 광주의 한 방송에서 뉴욕에 취재를 온다. 5.18 특별기획으로 '광주의 마지막 수배자'로 불렸던 고 윤한봉 선생과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항쟁 지도자였던 그는 5.18 뒤 미국으로 망명해 한국 민주화 운동과 함께 한인들의 민권운동 참여를 북돋은 길잡이였다. '한 손은 조국, 또 다른 한 손은 동포사회를 위해'라는 구호를 내걸고 한인들을 이끌었다. 그때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이 이제 50~70대가 됐다. 많은 이들이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후배들이 그 뿌리를 이어 줄기를 다듬고, 가지를 뻗치고, 열매를 맺어 가고 있다. 오늘 당신이 플러싱의 한 단체를 방문해 어려움을 말하고, 도움을 받았다면 당신은 바로 그 후배들의 손길과 닿은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수십 년이 흘러도 늘 5.18을 잊을 수 없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5-12

[데스크 칼럼] 사람은 달라져야 산다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아 27일 맨해튼과 한국 비무장지대(DMZ)를 비롯 전 세계에서 평화 손잡기.인간 띠잇기 마당이 펼쳐졌다. 맨해튼 남.북 유엔대표부를 잇는 '평화 손잡기'에는 준비위원으로 440여 명이 이름을 올리고, 350여 명이 스스로 나오는 등 한 뜻으로 모여 뜨거웠다. 손잡기가 끝난 뒤 오랜만에 가슴이 뭉클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러 해 앞으로 되돌려보면 이런 일은 '빨갱이'라며 손가락질 받기 일쑤였고, 욕을 먹을 다짐을 하고 나서야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적은 사람들만 모였는데 이제는 꽤나 마음이 열린 분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일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들이 한 구석에 몰린 듯한 느낌이다. 이 분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그래서 또 가슴이 찡하다. 이 분들은 어림잡아 이렇게 말씀한다. "북한이 저지른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지 않아 모르고, 잊었기에 허튼 짓을 한다." "북한 정권은 믿을 수 없다. 비핵화 안 한다." "문재인 정권은 북한에 한국을 갖다 바치려는 빨갱이.친북.좌파 정권이다." 듣다 보면 점점 더 거침 없는 말씀을 한다. 하긴 옛날엔 마음 편하게 이른바 '반정부'를 꾸지람하던 분들이 거꾸로 '독재타도.헌법수호'를 외치며 '반정부 투쟁'을 벌여야 할 노릇이니 답답하실 것 같다. '5.18'은 간첩들이 저질렀고, '세월호'는 '시체 장사'하는 것들인데 참 답답하리라. 그런데 어쩌겠나. 사람들이 달라져 '빨갱이들'이 많아졌다. 사람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지구는 아직 판판하고, 돌지 않는다. 아직도 왕에게 조아리며 힘들게 벌은 것을 빼앗기고, 이리저리 팔려 다니며 궂은일을 해야 한다. 원주민.흑인.아시안 등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고, 그래서 업신여김 당해 마땅하다. '계집'은 투표를 못하고, 하루 12시간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들어 한 소리했다간 두들겨 맞고 목숨을 잃는다. 돈 없는 집 아이들은 키도 다 안 자랐는데 허리가 부러지게 일하고, 젊은이들은 앙갚음 할 일도 없는 곳에 끌려가 서로 싸우다 일찍 숨을 거두거나 다쳐서 비틀거리며 산다. 사람이 달라지지 않으면 많은 이들이 오늘도 이렇게 살았을 터이다. 그래서 달라져야 한다. 더 나은 길을 찾고, 새 것에 겁내지 말아야 한다. 나이가 많고 적어서 다른 게 아니라 마음이 닫히고 열려 있어 다르다. 달라진 사람들은 '빨갱이'가 아니라 처음부터 마음을 닫지 않았거나 아니면 열은 까닭이다. 정권들은 못마땅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평화를 외쳐야 한다. 한국전쟁을 잊어서가 아니라 그 아픔을 안다면 더 외치며 손을 잡아야 한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4-28

[데스크 칼럼] '한인사회는 관심 밖'

13일 플러싱에서 재외한인사회연구소(The Research Center for Korean Community)가 '뉴욕 한인사회 다큐 시리즈' 상영회를 열었다. 재외동포재단 후원으로 만드는 시리즈 첫 작품으로 '뉴욕 민권센터의 30년'을 보여줬다. 연구소는 뉴욕시립대 퀸즈칼리지 안에 지난 2009년 둥지를 마련했다. "재미한인에 대한 연구를 장려하고, 재미한인에 관한 데이터와 자료를 한인 커뮤니티.대학.연구기관.한국 및 미국 정부기관에 배포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연구기관입니다." 이날 나눠준 전단에 적힌 글이다. 연구소장은 퀸즈칼리지 민병갑 교수(사회학)가 처음부터 맡고 있다. 상영 후 마련된 대화의 시간에 민 교수는 가슴 아픈 말을 했다. "수많은 미국 대학에 한국 학과가 있지만 한인사회를 다루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주로 한국 문학.역사.언어 등을 가르치는 학과들에 많은 지원을 하지만 한인사회에 대한 연구에는 관심도, 지원도 없습니다." '한인사회는 관심 밖'이라는 뜻이다. 밑천이 없으니 한인사회를 파보려는 학자들도 찾기 힘들다. 따라서 한인사회는 현실을 따져볼 통계가 거의 없고, 역사를 잃어가는 커뮤니티가 되고 있다. 옛날부터 한인사회는 언제나 떠나온 땅에 짝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고국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팔을 걷어붙이고 돈을 모아 보내고, 거리로 나가고, 목청도 높여 왔다. 하지만 '세계화'란 번쩍이는 구호 아래에서도 늘 때 되면 가끔씩 나왔다 사라지는 '재외동포 지원'이란 뜬구름만 보면서 살아왔다. 물론 지원은 제대로 해야 한다. 엉뚱한 데 국민의 세금을 낭비할 수 없다. 그런데 반드시 해야 하는데 제대로가 아닌 것이 바로 '커뮤니티 단체'와 '한인사회 연구소' 지원이다. 더구나 한인사회는 갈수록 1세와 1.5세, 2세가 뒤섞이며 여러 갈래의 길로 가고 있다. 이들이 하나로 모여 한인들의 삶 속에 녹아 들어가 움직이는 곳, 그리고 그 발자취를 가려서 남기는 곳이 여기다. 정계 로비 등 몇몇 사람의 '날 좀 보소'로 전락하기 쉬운 '화려한' 활동 말고 정말 도와야 할 곳들이 있다. 커뮤니티에 뿌리 박고 땀 흘리는 이들이 '관심 밖'이 되지 않는 고국이어야 '어머니의 땅'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 뜻에서 이번 재외동포재단의 후원은 손뼉을 쳐야 할 일이다. 오는 6월 연구소가 UC리버사이드 장태한 교수를 초청해 세미나를 연다. 한인사회 연구는 동부에 '민병갑', 서부에 '장태한'으로 불릴 정도로 두 학자는 '관심 밖'인 곳에서 마라톤을 달리고 있다. '관심'을 쏟아야 한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4-14

[데스크 칼럼] 백인우월주의와 테러

"출생률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내일 모든 비유럽인들을 쫓아낸다고 해도 유럽 사람들은 삭아 버려 끝내 죽음에 이른다." "우리는 역사상 볼 수 없었던 수준의 침략을 겪고 있다. 백인들은 번식에 실패했다. 정부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값싼 노동력, 새 소비자, 납세자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정부와 기업들은 백인들을 대체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수백만이 우리 국경을 넘어 몰려 오도록 초대한다." "다른 사람의 아이들로 우리의 문명을 되살릴 수 없다. 유럽의 모든 출생률은 대체비율 밑이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그건 죽어가는 문명이다." "프랑스로 진격한 동맹군 군인은 15만 명이었다. 15만 명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공격이었다. 성인 24만 명과 거의 6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지난 2개월간 3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텍사스를 통해 미국을 침략했다. 그리고 또 30만 명이 중미에서 미국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뉴질랜드에서 호주 백인우월주의자 테러범이 총을 쏴 50명을 죽였다. 그는 일을 벌이기에 앞서 선언문을 남겼다. 위의 말 가운데 앞 문장은 그가 남긴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아래 두 문장은 미국 공화당 연방의원들의 말이다. 스티브 킹(아이오아)과 루이 고머트(텍사스) 하원의원이 이민과 관련해 했던 말이다. 테러범은 선언문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다양성은 약점"이라고 썼다. "다양성은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단결, 목적, 신뢰, 전통, 민족주의 그리고 인종 민족주의가 힘을 준다." 또 대규모 이민은 나라를 분해한다고도 했다. "대규모 이민은 우리의 권리를 빼앗고, 국가와 커뮤니티, 민족적 동질감, 문화를 파괴한다. 우리 사람들을 파괴한다." 킹 의원도 다양성은 우리의 강점이 아니라고 외쳤다. 그는 "문화를 섞는 것은 보다 나은 삶의 질이 아니라 낮은 질로 이끈다"고 말했다. 테러범은 또 유럽 여성들이 이민자들에게 강간을 당한다는 얘기를 강조했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6년 대선 출마를 하며 첫 연설에서 했던 말이 떠올려 진다. "멕시코가 사람들을 보낼 때 최고의 사람들을 보내지 않는다. 그들은 마약을 들여오고, 범죄를 들여온다. 그들은 강간범이다. 그리고 가끔, 내 짐작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 허핑톤포스트가 뉴질랜드 테러 사건을 보도하며 이렇게 우리의 기억을 되살려줬다. 물론 모두 테러를 규탄했고, 대통령과 이 의원들을 테러에 엮으려는 것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백인우월주의가 '백색 테러'를 부추기는 것은 맞다. 이슬람국가(IS)와 백인우월주의자는 같다. 우리는 극단이 판치는 무서운 시대에 이민자로 살고 있다. 우리가 바꿔야 한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3-17

[데스크 칼럼] 아마존과 국가비상사태

아마존이 뉴욕시 롱아일랜드시티를 내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 장벽을 쌓겠다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아마존 제프 베조스 CEO와 트럼프 대통령은 사이가 좋지 않다. 하지만 둘은 같은 점이 많다. 돈이 많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어마어마하게 흔들 수 있는 힘이 있다. 아마존이 뉴욕에 들어오는 것을 마구 막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30억 달러나 되는 감세 혜택을 받고 제2 본사를 지으면서 커뮤니티를 위해 하겠다는 일은 너무 적다는 데 화가 났다. 아마존이 뉴욕을 버리자마자 '0 달러' 세금 이야기가 쏟아졌다. 지난해 아마존은 110억 달러를 벌었는데 연방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이렇게 된 데는 트럼프의 감세 혜택이 큰 몫을 했다. 아마존만 그런 건 아니다. '포천500' 기업들 가운데 40%가 지난 2008~2015년 사이에 적어도 한 해 넘게 연방 세금을 한 푼도 안 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지난해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낮췄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연방 세금 수입은 바닥을 쳤고, 정부 빚은 22조 달러로 치솟았다. 트럼프 취임 뒤 무려 2조 달러가 늘었고 미국인 한 사람이 6만7000달러씩 빚을 지고 있다. 그런데 아마존은 뉴욕에서 또 감세 혜택을 원했고, 트럼프는 국경 장벽에 80억 달러를 쓰겠다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2조, 2조, 80억, 30억, 그냥 사람들은 입만 딱 벌릴 돈이다. 미국인들은 집 모기지 빚 10조, 학자금 빚 1조5000억, 크레딧카드 빚 1조200억, 전체 빚이 13조다. 한 집이 주름잡아 13만 달러가 넘는 빚을 지고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 사람 같은 이들의 돈 잔치는 끊이지 않는다. 그 곳에 베조스와 트럼프가 있다. 국가비상사태인 것이 맞다. 실업자가 줄었다고 좋아만 할 수 없다. 일을 해도 자꾸 빚이 쌓이고 삶은 곪는다. 모두 다 힘든 건 아니다. 하지만 힘든 사람이 너무 많아 '부자 증세' 외침에 손뼉을 친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할 까닭은 또 다른 곳에 있다. 2012년 커네티컷 초등학교 총기 난사로 아이들 2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이맘때 플로리다 고교에서 젊은이 17명을 잃었다. 하지만 들끓었던 총기 규제 외침은 시들해졌다. 2013년 뒤 네 사람 넘게 죽거나 다친 총기 사건은 2000여 건이었다. 2200여 명이 죽었고 8200여 명이 다쳤다. 한 주에 한 번 꼴로 총기 난사가 이어졌다. 2014년 1월 단 한 주만 없었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 다만 국경장벽은 아니다. 세법도 바꿔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 감세는 아니다. 트럼프와 베조스는 우리와 다른 나라에 살면서 서로 싸운다. 그 나라는 어딘가.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2-18

[데스크 칼럼] 불법이민 아닌 서류미비

툭하면 듣는 '법 앞에 평등'이란 말은 듣기만 좋고 쓸 데가 없다. 평등하지 않기에 평등하다고 억지를 부리는 말인 탓이다. 법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사람이 만들고, 고치고, 뒤집고, 있거나 없는 걸로 한다. 헌법도 마찬가지다. 요즘 이민자들에겐 법이 말썽이다. '불법'이란 말은 잠깐이면 '합법'으로 바뀔 수 있다. 이민자 단체들이 불법체류자(illegal alien) 또는 불법이민자(illegal immigrants)를 서류미비자(undocumented)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그리고 사람은 불법일 수 없다(no human being is illegal). 하지만 '이민 서류'가 없는 건 맞다. 그래서 법을 바꿔 서류를 달라는 것이다. 1986년 이른바 '사면'이라고 부르며 서류를 줬던 때가 있다. 그 때 300만 명이 합법이 됐다. 지금은 한인 20만여 명을 비롯 1100만여 명이 서류미비자다. 이렇게 많아진 것도 법이 바뀌어서 그렇다. 서류미비자라 하더라고 가족.취업 이민 신청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면 1000달러를 내고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이민법 245(i) 조항이 2001년 4월 없어졌다. 245(i) 신청자는 2001년 4개월 간에만 31만5000여 명이었다. 그 뒤 합법의 길은 없어졌고 서류미비자는 자꾸 늘어났다. 법의 줄거리는 거의 이렇다. 힘 센 사람들이 만들고 모두에게 꼭 지키라고 한다. 맞는 말도 꽤 많이 넣는 데 언제나 생각이 못 미친 곳이 있다. 또 일부러 속셈을 하고 그른 말을 넣어 몇몇 사람들 뱃속을 채우려 한다. 이들이 잔뜩 배를 부풀린 뒤에야 잘못이라는 외침이 커지면 못 이겨 바꾸며 또 속셈을 한다. 힘이 없는 사람들은 다르다. 때로는 어깃장 '불법' 딱지를 짊어지고 살면서 낑낑대다가 "해도 너무 한다"는 말이 나오면서 법을 새로 만들거나 바꿔달라고 모여서 외친다. 가끔은 꿈을 이룬다. 그 때 자취가 새겨지며 사람 살림은 앞으로 간다. 그런데 모여서 외칠 때 정말 '불법'을 저지르기도 한다. 넘으면 안 되는 곳을 지나치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밀기도 하고, 주먹도 휘두르고, 뭘 좀 던지기도 한다. 힘 센 사람들이 '합법'으로 휘두르는 주먹질에 두들겨 맞기 일쑤이지만 그래도 애써 이길 때도 꽤 있다. 투표를 하겠다는 온 누리 여성들의 선거권 운동, 밥 먹고 자고 쉬고 싶다는 노동운동, 업신여기지 말라는 유색인종 민권운동이 그랬다. 그리고 지금의 이민자 권익운동이 그렇다. 불법이라고 혼내지만 말고 법을 바꿔서 합법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법 앞에 평등'이 잠시나마 된다. 처음부터 서류미비자들은 불법의 테두리에 가둘 수 없는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일하지 않는 서류미비자들은 되돌아 가게 마련이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2-10

[데스크 칼럼] 2020년 대통령 선거

선거운동 날짜를 잡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미국에선 한 해, 하루도 정치인들이 선거운동을 못할 날이 없다. 때문에 '당선된 날이 선거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날'이다. 그래서 2020년 11월을 앞둔 대통령 선거운동은 이미 2016년 첫 발을 디뎠지만 이제 스물 한 달 밖에 안 남았으니 코 앞이다. 겉치레이긴 하지만 공화당전국위원회(RNC)는 지난 25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공화당 대선 후보라는 결의안을 냈다. 공화당 안에서 트럼프에게 맞설 사람이 조금 있는 것 같지만 섣불리 나서지 못하게 일찌감치 못을 박은 것이다. 민주당 후보로는 수십 명이 나서고 있다. 미국 정치의 뿌리 깊은 잘못 가운데 하나가 선거운동이다. 선거란 나라를 이끌 사람을 뽑아 정치를 맡기는 것인데 정치는 하지 않고 늘 선거운동을 하는 꼴이다. 그러다 보니 나라를 이끌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 지 꾀를 쓰고 정책은 선거운동에 끌려 다닌다. 앞 뒤가 바뀐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월 15일까지 연방정부 업무정지 '셧다운'을 잠깐 미뤘다. 이제 선거운동은 정말 땀 나게 이어진다. 나라의 앞날을 밝히는 빛은 가리고, 사람들이 어느 쪽을 바라보게 해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 지를 따지며 어둠을 키운다. 그래서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치는 미국-멕시코 국경의 담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거운동이다. 담을 국경에만 세우는 게 아니라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잡게 한다. "이민자는 나쁘고 더럽다. 그래서 미워하고 밀어내야 한다." 그러면 마음에 담을 쌓은 사람들이 나에게 몰린다는 셈을 한다. 반이민, 반낙태, 반동성애는 공화당이 지난 20여 해 써먹어 온 선거운동 단골 차림이다. 그리고 반이민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잘 팔아온 먹거리다. 이민자들이 미국에 얼마나 많은 보탬이 되는 지는 두 말 하고 싶지 않다. 이민자 가운데 서류미비자들만 때린다는 말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다. 그 까닭을 알려면 눈을 조금만 크게 뜨고 둘레를 살펴 땀 흘려 일하는 서류미비자들을 보면 된다. 이들이 사라지면 농산물과 밥값이 치솟는다, 농업과 건축.호텔.청소.조경 등 이들의 손길이 닿아 있는 곳곳이 어지러워 진다. 그리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민사회 경제는 무너진다. 그럼 잘 모르고 반이민을 외칠까? 아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까닭은 선거운동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그렇게 서류미비자 단속을 외치면서도 정작 고용주를 세게 치지 않는 이유는 정말 다 쫓아내면 무너질 걸 알기 때문이다. 반이민은 선거운동이 정책을 뒤흔들고 망가뜨리는 가장 으뜸가는 일이다. 그래서 속내를 알리고 막아야 한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9-01-27

[데스크 칼럼]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8년 끝자락입니다. 지난 한 해도 뉴욕중앙일보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을 띄웁니다. 2018년 뉴욕중앙일보는 많은 것을 바꿨습니다. 회사 모양새나 알맹이가 지난 해처럼 많이 바뀐 때는 처음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이없는 잘못이 많았습니다. 지면이 겹치고, 틀린 글자가 늘어 여러 독자께서 따끔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힘과 가슴, 머리가 모자란 탓에 뜻이 꺾이기도 했습니다. 조그맣게 이룬 것도 있지만 결코 자랑할 정도는 아니기에 더 말을 꺼내지 않겠습니다. 다만 올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드리겠습니다. 올해 뉴욕중앙일보는 한인사회 신문이 가져야 할 '이민생활의 길잡이' '민권.인권운동' '이웃 소식', 이 세가지 뼈대 위에 살을 찌우겠습니다. 우선 뉴스의 폭을 넓히고, 언제나 '한 걸음 더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독자 여러분의 눈도 더 넓고 깊어질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미국에 오면, 왔던 그 때의 생각에 멈춰 살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어려움 때문에 한인사회 '섬' 안에 갇혀 살기 때문이라고 풀이합니다. 뉴욕중앙일보가 안팎을 더 넓고 깊게 보여드리는 알찬 뉴스를 싣도록 애쓰겠습니다. 또 보다 많은 길을 트겠습니다. 딱딱한 뉴스의 틀을 넘어 먹고.자고.놀고.입을 것들을 펼쳐 보이겠습니다. 그래서 넉넉한 마음을 누릴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오늘 저녁엔 무엇을 먹을지, 주말엔 어디로 갈지, 내일 무슨 옷을 입을지 등 시원하고 산뜻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는 글을 더 많이 싣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뜻을 기어이 이뤄내 내년 말이 되면 올해와는 달리 자랑을 하고 싶습니다. 자랑하려다 또 고개를 숙일지 모르지만 감춰진 얼굴로 살짝 웃을 수 있을 만큼이라도 이루기를 바랍니다. 다가올 한 해가 한인사회에 어떤 기쁨과 즐거움, 슬픔과 아픔을 줄지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합니다. 사람 마다 눈길은 끌리는 다른 곳으로 갑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한인들이 함께 겪을 일들도 많습니다. 한인들의 삶을 흔드는 이민.교육.복지.경제 등 미국 우리 정부의 정책, 북.미 관계, 한국의 앞날 등이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자꾸만 엉키고 시끄러운 앞날은 눈을 감아 안 보려 하더라도 우리 삶을 밀고 당겨 갑니다. 그래서 눈은 뜨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골치 아픈 것뿐 만이 아니라 좋은 일도 보여 눈을 맑게 합니다. 뉴욕중앙일보가 힘 닿는 데까지 보여드리겠습니다. 꾸준히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어느 한 해라도 걱정 하나 없고, 속 태우지 않을 때는 없습니다. 그래도 땀 흘린 보람을 느끼고, 손 맞잡고 서로 보살펴 뿌듯해 하는 그런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뉴욕중앙일보는 여러분의 친구입니다. 김종훈 / 편집국장

2018-12-30

[데스크 칼럼] 이민자 차별의 사슬을 끊어라

"처음 들어가면 살아 있는 닭을 싣는 일부터 한다. 손가락마다 닭을 한 마리씩 끼워 넣어 10마리를 한꺼번에 트럭에 던진다. 일주일만 일하면 피부병에 걸려 '닭살'이 된다. 업주는 좁은 아파트에 우리를 합숙시키고 전기도 넣어주지 않아 촛불을 켜고 저녁을 먹었다. 그래도 영주권을 받을 희망으로 일했다. 매니저에게 잘 보여 몇 달 후 비닐 포장 일을 맡았다. 일도 조금 쉬워지고 1년 만 일하면 영주권을 받을 줄 알았는데 모두 헛일이 됐다. 나는 이제 불법체류자다." '닭공장' 영주권을 신청한 버지니아주 한인에게서 10여 년 전 들은 얘기다. 그는 합법적으로 영주권을 신청했지만 담당 변호사가 닭공장을 둘러싼 대형 이민사기 사건으로 붙잡혔다. 그리고 영주권의 꿈을 잃었다. 30대였던 그는 지금도 미국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게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불체청년들을 뜻하는 '드리머(Dreamer)'가 됐을 게다. 불체자들은 사연이 다르다. 때로는 불합리한 이민행정의 피해자이기도 하고, 극심한 자연재해와 극악한 생활환경의 생존자들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연쇄이민(Chain Migration)'을 막겠다고 한다. 가족이민을 줄이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민자들은 지난 수십 년 간 '연쇄(Chain)'가 아닌 '사슬(Chain)'에 묶여 있다. 이민자들을 차별하는 사슬부터 풀어야 한다. 1965년 미국 정부는 유럽 출신 백인만 주로 받아들이던 이민문호를 아시안과 라티노에게도 열었다. 그리고 1986년 농장 노동자 등 불법체류자 270만 명에게 합법 신분을 제공했다. 이유는 '온정'이 아니라 '경제'였다. 그 뒤 이민자들은 50여 년간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닭공장 만이 아니다. 이민자들은 모두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을 책임졌다. 농장에서 허리가 부러져라 뙤약볕을 맞으며 곡물을 수확하고 과일을 땄다. 극심한 막노동에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졌지만 계절 노동자로만 고용되는 합법적인 차별에 시달렸다. 많은 농장 노동자들이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남았다. 1986년의 '불체자 사면'은 이 같은 저임금 중노동에 나설 미국인이 없었기에 내려진 조치였다. 또 육류가공업체들이 이민자들을 고용했다. 이유는 물론 값싼 노동력이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소고기를 만들기 위해 소를 죽이고, 피를 뽑고, 내장을 꺼내 버리는 일을 했다. 이민자들은 모두의 옷도 책임졌다.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대기업들이 중남미로 공장을 옮기기 전까지, 그래서 무더기로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봉제업체들이 문을 닫기 전까지 바느질은 이민자들의 몫이었다. 이민자들은 집을 짓고, 이삿짐을 나르고, 거리와 집을 청소했다. 대도시 다운타운에서 아침 일찍 길거리로 나서 하루 일당을 주는 건설업자.이삿짐센터.청소업자에게 품을 파는 값싼 일용 노동을 했다. 9.11 테러 참사 현장을 청소하는 일에도 이민자들이 동원됐다. 유독성 가스가 넘치는 그 곳에서 폐가 썩으면서 쓰레기를 치웠다. 이민자들은 1970년대부터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우범지역에 가게를 차렸다. 장사를 하며 누구나 한 번 또는 여러 번 머리에 총구를 들이미는 범죄에 시달리고, 업소 지붕이 뚫리고 물건을 잃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땀 흘려 성공하는 꿈은 잃지 않았다. 이민자들은 미국 대도시 낙후 지역 경제를 되살린 개척자들이다. 그런데 이제 이민을 축소하겠다고 한다. 한인 20만 명 등 불체자 1200만 명의 앞날은 아직도 어둡다. 그래서 합법과 불법을 따지지 말고 이민사회가 더 힘을 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아이들에게 떳떳할 수 있다. 미국의 유색인종 이민은 아프리카에서 붙잡혀온 흑인들을 배 밑창에 묶는 사슬에서 시작됐다. 아직도 사슬이 남아 있다. 인종 차별과 이민자 차별은 뿌리가 같다. 차별의 사슬부터 끊어야 한다. 불체자 합법화가 시작이다. 김종훈 / 경제부장

2018-01-26

[데스크 칼럼] '1987'과 미국땅 한인들

오늘 영화 '1987'을 본다. 눈물을 닦을 휴지 두루마기 하나 들고 간다. 1987년 그 때 미국에 사는 한인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기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1986년 미국 7개 지역에 '민주개헌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한 달 만에 1만1000명의 서명을 받아 보냈다. 1987년에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규탄' '전두환 정권 영구집권 음모분쇄'를 위한 단식투쟁이 뉴욕과 LA에서 이어졌다.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하루 1달러씩 모으자는 '황토기금'도 만들었다. 고문당하고, 옥살이 하고, 목숨을 잃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그런 위협이 없으니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더 땀 흘리자고 다짐했다. 학업.생업을 한참 미루고 활동에 뛰어드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1987년 8월 LA에서는 '민족의 통일과 단결을 위한 해외동포대회'가 열렸다. 직선제 개헌을 이뤄낸 6월 항쟁의 뜻을 되새기며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다. 캐나다.유럽.호주에도 모임이 만들어져 대회에 함께하며 뭉쳤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미국에 올 때 항상 시위대에 시달렸다. 한국에서는 폭력으로 시위를 진압하지만 미국에서는 합법적인 시위를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전.노 전 대통령들은 항상 피해 다녀야 했다. 백악관 등 행사가 열리는 곳 앞에서는 물론이고, 묵고 있는 호텔, 심지어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군 기지 공항에서도 허가를 받아 시위를 벌였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는 대통령을 코 앞에서 바라보며 '독재타도' 구호를 외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이들이 가는 곳마다 가까운 지역 한인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조금 먼 지역에서도 자동차로 하루 종일 이동해서 몇 시간 동안 시위를 하고 돌아가는 일도 많았다. 때문에 같은 사람들이 미 전국을 쫓아다니는 게 아니냐는 오해도 샀다. 워싱턴DC에서는 1986년 문을 연 한겨레미주홍보원이 활동하고 있었다. 영문잡지 '코리아 리포트'를 발간하며 한국 소식을 알렸다. 미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군사정권의 인권탄압을 폭로하며 미국의 양심에 호소했다. 고 에드워드 케네디 연방상원의원 등이 한국 양심수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편지 등을 부탁하면 항상 거들어주며 힘을 보탰다. 또 미국에 있는 여러 나라 출신 인권단체들과 손을 잡고 서로 도우며 활동했다. 이런 활동을 펼친 한인들이 가장 힘들었던 건 다름아닌 다른 한인들의 손가락질이었다. '빨갱이' '친북' '반정부주의자'라고 욕을 먹었다. 또 욕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철저히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억울해서 가슴이 찢어졌겠지만 잘 버텼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도나도 6월 항쟁을 지지했다. 그래도 미워하지 않고 함께 기뻐했다. 30년이 흘렀다. 그 때 활동을 이끌었던 단체 재미한국청년연합과 한겨레운동미주연합은 이제 없지만 미국땅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영화를 본 뒤 감격과 흥분보다는 답답한 가슴을 두드리게 될 것 같다. 기쁨은 잠시였고, 세상은 참 더디게 나아지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든 장준환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 광장에 모여 외쳤던 사람들을 386이라고 하는데 이후 386세대들이 어떻게 살았나. 아파트값을 이렇게 올려놓고. 나는 이 영화가 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대체 그 순수함은 어디로 갔느냐는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영화이기를 바란다." '아파트값을 이렇게 올려놓고'란 말이 가슴을 찌른다.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정치.경제.사회 민주화는 아직 한참 더 나아가야 한다. 역사는 자주 어지러운 걸음으로 걷고 때로는 뒤로 간다.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고 문익환 목사가 연설 대신 열사 26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울부짖으며 부를 때 그 먹먹했던 가슴은 미국땅 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나은 조국을 바라는 마음은 바뀌지 않을 게다. 그 순수함은 아직도 살아 있다. 김종훈 / 경제부장

2018-01-12

[데스크 칼럼] 트럼프의 크리스마스 선물

올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회가 안겨주는 세제 개혁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으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선물을 당장 받지는 못하지만 연방소득세를 내는 사람이면 2018년 신고 때부터 받는다. 각자 다양한 처지에 따라 받을 선물 액수가 달라 얼마나 기뻐해야 할지 궁금하다. 비율만 따져보자. 세금정책센터 분석에 따르면 2018년 소득세 신고 뒤 연 소득 2만5000달러 미만부터 8만 달러까지 돌아가는 혜택은 전체의 1~11.4%다. 2025년에는 1.3~11.2%로 비슷하다가 2027년에 마이너스로 바뀐다. 2만5000달러 미만은 -4.6%, 2만5000~4만 달러는 -5.4%, 4만~8만 달러는 -2.1%가 된다. 이들은 10년 뒤 세금을 더 낸다. 여기까지가 서민.중산층이다. 소득이 8만 달러를 넘으면 2027년에도 현재보다 세금을 덜 낸다. 8만달러부터 73만 달러 미만은 적게는 2.9%(2027년)에서부터 22.1%(2018년)까지 혜택이 돌아간다. 돈을 많이 벌수록 혜택이 많은 세제 개혁의 원칙에 따라 73만 달러 이상 버는 최고 부유층은 2018년 20.5%, 2025년 25.3% 그리고 2027년에는 혜택 비율이 82.8%로 뛰어 오른다. 서민.중산층 혜택이 중단되고 부유층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소득 8만~30만 달러도 2017년에는 혜택이 2.9~4.4%에 그친다. 30만 달러 이상은 벌어야 2027년 16.4%다. 73만 달러 이상 벌면 80%가 넘는 '대박'이다. 그러니까 이 비율에 맞는 정도만 기뻐하면 되겠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더라도 10년 뒤 최고 부유층이 돼 혜택의 80% 이상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기뻐 날뛸 수도 있겠다. 연 소득이 73만 달러가 넘는 사람은 1% 정도다. 세제 개혁으로 10년 뒤 세금을 더 내야 할 사람은 절반이 넘는다. 마침 세계 경제학자들이 "미국 방식을 피하면 소득 불평등 심화를 해결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토마 피케티 교수 등 잘 알려진 학자들이 최근 '세계의 불평등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최고 부유층 1%의 소득이 1980년엔 미 전체의 10%로 서유럽과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20%로 서유럽 12%와 큰 차이를 보였다. 또 1%의 실질소득은 지난 37년 동안 205% 늘었는데 서민 50%는 늘지 않았다. 반면 서유럽 50%는 경제성장률 전반과 비슷했다. 이유는 불평등을 조장하는 정책과 제도가 어울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가장 큰 이유는 부자와 대기업에 유리한 세율.세제였다. 그리고 이대로 계속 가면 '파국'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이 발표 뒤 일주일 만에 부자와 기업의 세율을 더 깎아주는 제도가 마련됐다. 지난 대선에서 부유층은 공화당과 트럼프에게 막대한 선거자금을 쏟아 부었다. 그래서 이번 세제 개혁은 이들에게 보답하는 셈이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후원자들이 '부자 감세'에 실패하면 선거자금 지원을 끊겠다고 엄포를 놓는다고 털어놓았다. 선거자금이 투자가 되고, 세제 개혁으로 훨씬 더 많은 이익을 보는 꼴이다. 공화당이 2025년 이후까지 최고 부유층의 세제 혜택 비율을 높여놓은 이유도 알만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재선에 성공한다면 임기는 2024년까지다. 그 다음에도 공화당 대통령을 뽑고 공화당이 연방의회를 장악하고 있어야 더 큰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어차피 공화당을 밀겠지만 선거자금 지원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서민들이 이런 상황에 기뻐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뒤집어 쓰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지금 몇 백 달러 세금 돌려받고 좋아하는 것 보다 소득불평등 해결 방안을 정부가 마련하는 것이 더 기쁘지 않을까? 세제 개혁안에 대한 지지 여론은 30%를 조금 넘었다. 그렇지만 공화당과 트럼프는 언제나처럼 아랑곳하지 않았다.

2017-12-22

[데스크 칼럼] 더 착해져야 어른이다

또 한 해를 보내며 어떤 다짐으로 올해를 마무리할 지 생각했다. 나이가 50을 훌쩍 넘다 보니 이제 '어른'이 되야 할 터인데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다짐은 어른이 되자는 걸로 했다. 그런데 어른이 무언가 싶다. 누구나 나이를 많이 먹는다고 더 똑똑해지고, 슬기로워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머리가 굳고 생각이 낡아지기 쉽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롭고 올바른 생각을 가다듬지 않으면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그런데 더 큰 잘못은 못된 사람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삶에 지치고 찌든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나만 생각하고, 속이 좁아지고, 잔꾀가 늘고, 너그러움이 없어진다. 하지만 못된 사람이 되는 탓을 힘든 삶에만 돌릴 수는 없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도 뜻이 있고 힘을 다하면 착해질 수 있다. 내 집과 작은 마을에서부터 큰 나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어른들이 이끈다. 그런 어른들이 못된 사람들이라면 모두 힘겨울 수 밖에 없다. 착한 척 해봐야 쓸데 없다고들 하지만 오히려 착하기 만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나이가 들면서 착하지 않으면 못된 곳으로 사람들을 이끌게 된다. 어릴 때부터 "성공해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착하게 살아라"는 말은 점점 듣기 어려워졌다. 어른들이 착하지 않으니 아이들에게 그런 가르침을 주기 힘든 것 아닐까? 나라의 어른이 되야 할 사람들이 온갖 거짓말과 막말을 일삼고, 돈과 힘을 쫓아 움직이는 걸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착한 어른이 도대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지 않을까? 착하다고 바보가 되야 하는 건 아니다.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만 하라"고 힘차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들을 보듬어줄 수 있다. 너그러움은 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큰 잘못도 없는 데 슬퍼진 이들에게 베풀어야 맞다. 착하다고 잘못에 눈을 감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어진 눈을 더 크게 뜨고 바라보며 고쳐야 한다. 잔꾀는 없애는 대신 잘못을 바로잡을 슬기로움은 키워야 한다. 우리 삶의 작은 틈에서도 착한 발자취를 남겨야 한다. 내 말과 몸짓, 모자란 생각이 다른 이에겐 아픔이 되지 않았을지, 다른 이에게 기쁨을 주는데 주저하지 않았는지 찬찬히 따져 보며 살아야 한다. 이렇게 뻔한 얘기는 왜 하나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그다지 '착한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못된 정권과 사람들에 맞서 '촛불'을 들 수 밖에 없었다. 미국에서도 성추행에 시달린 이들이 '미투(Me Too)' 운동을 이어갈 수 밖에 없고. 미국인이 되기를 바라는 서류미비 청년 '드리머'들이 거리에 나서 목청을 높일 수 밖에 없다. 테러와 핵무기 개발.확장, 성.인종.민족.출신국.지역.장애에 따른 차별, 환경 파괴 등도 두말할 나위가 없는 못된 짓이지만 여전히 세상을 뒤덮고 있다. 제대로 된 '착한 세상'은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착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다독거리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음 해에도 더 착하게 살자고 다짐해야 험한 세상에서 희망의 빛을 살릴 수 있다. 비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것 같아도 더 못된 짓이 판을 치던 어제가 오늘 이만큼이라도 바뀐 것에 웃음지으며 내일은 더 잘하자고 해야 한다. 나이가 들은 사람들도 이런 생각은 젊을 때나 하는 거라고 묻어버리지 말자. 젊거나 늙거나 착해서 나쁜 게 뭐가 있나? 못되게 살아야 잘된다는 말은 틀렸다. 착하게 살아서 잘된 사람도 많고, 못되게 살아서 잘 못된 사람도 많다. 잘 된다는 뜻도 서로 다르다. 얼마 전 멀리 사는 아이들이 아빠가 한 곳에서 일한 지 스무 해가 됐다고 초콜릿을 잔뜩 보내왔다. 이 아이들에게 나는 착하게 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려면 나부터 착한 어른이 되야 한다. '참 어른'이 되는 길은 더 착해지는 것이라 다짐한다. 그래야 어른 노릇을 할 수 있다.

2017-12-15

[데스크 칼럼] 살찐 고양이들을 잡아야 한다

전문가들의 경제 전망은 자주 틀린다. 지난 2007년 금융위기를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다. 요즘은 누구나 밝은 전망을 내놓는다.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이 2011년 이후 최고인 4%를 기록하며, 미국도 3%를 넘는다고 한다. 실업률도 계속 낮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설명을 잘 못하는 게 있다. 경제가 좋은데 왜 임금은 몇 년째 오르지 않을까? 지난 10월 미국 실업률은 4.1%로 17년 만에 최저였다. 그런데 올 상반기 실질임금은 지난해보다 0.2% 오르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유를 설명한다. 노동생산성 증가세 둔화, 인플레이션 기대 약화, 고령층.여성 노동참여 증대 등 복잡하다. 간단히 말해 기업들이 돈을 더 벌면서도 직원 임금을 올리는 데 인색한 것 아닌가? 또 경제가 좋다지만 지난 3분기 미국 가계부채는 사상 최고인 13조 달러에 달했다. 가구당 평균은 13만 달러가 넘어 지난해 가구당 중간소득 5만여 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이중 공부한다고 쓴 학자금 빚이 1인당 5만 달러가 넘는다. 이런데 경제가 좋은가? 전문가들이 금융위기를 예상하지 못한 이유는 금융계의 욕심을 놓쳤기 때문이다. 무더기로 '깡통주택'이 될 것을 알고도 단기간에 막대한 수익을 노렸다. 부실 모기지 융자를 남발한 뒤 크게 한탕을 하고 발을 뺀 그들의 부도덕한 행태는 전망에 없었다. 지금 경제가 좋다는 전문가들과는 달리 미국 경제가 '붕괴' 됐다고 최근 주장한 학자가 있다. 이유는 빈부격차다. UC버클리대학 게이브리얼 저커만 교수는 1980~2014년 계층별 수입을 분석한 결과 하위 50%는 소득이 전혀 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심지어 최하위 20%의 소득은 줄었다. 중산층 40%의 소득도 연 평균 1.2% 증가에 그쳐 평균 연 소득은 6만5300달러에 머물렀다. 반면 부유층 0.1%는 소득이 320% 늘어 평균 연 소득은 600만 달러였다. 최고 부유층 0.001%의 연 소득은 636%나 늘어 평균 연 소득은 1억2190만 달러였다. 이들 부유층은 대부분 대기업 소유주이거나 대주주들이다. 이들의 주머니로만 돈이 쌓여가니까 임금이 오르지 않는 것 아닌가? 정부는 법인세를 확 낮춰서 중산층을 돕겠다고 나섰다. 법인세를 덜 내면 기업들이 임금을 올리고, 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한다. 글쎄다. 전문가들은 또 인공지능의 발달로 수억 명의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한다. 한 연구소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최대 8억 명이 실직한다. 전 세계 노동력의 5분의 1, 미국 일자리 3분의 1이 없어진다. 물론 새 일자리도 생기지만 없어지는 것과는 직종이 다르다. 대량 실업사태를 피하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경제 전망이 좋다고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인공지능에 따른 실업사태를 예고한다. 장기적으로 성장의 열매는 모두 부유층에게 돌아가고, 노동자이거나 스몰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실업과 폐업의 위기에 마음을 졸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 성장의 열매가 공평하게 나뉘어지고, 인공지능의 도입에 다른 실업 사태도 막는 방법은 없을까? 현 경제 정책으로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빈부격차로 '붕괴'된 경제를 살릴 수 없다. 저커만 교수에 따르면 대공황 직전 상위 1%는 소득의 25%를 갈취했다. 현재는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20%를 가져가고 있다. 조금만 더 심해지면 대공황 직전 수준이 된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대기업 간부들의 최고 임금을 제한하는 '살찐 고양이법'이 논의되고 있다. '살찐 고양이'란 선거 때 정치 후원금을 내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들을 꼬집는 말이다. 살찐 고양이들을 통제하지 못하면 경제는 그들만의 놀이터가 되고, 서민들은 고통 받는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살찐 고양이들을 잡는 경제 정책이 필요한 때다.

2017-12-01

[데스크 칼럼] '우상과 이성'

1977년, 리영희 교수의 책 '우상과 이성'이 나왔다. 40년이 지났다. '우상과 이성'은 이에 앞선 그의 책 '전환시대의 논리'와 함께 한국 젊은이들의 머리를 '쇠망치'로 내려치며 일깨웠다. '우상과 이성'의 머리말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책의 이름을 일컬어 '우상과 이성'이라고 한 이유이다." '우상'이길 원했던 군사독재 정권은 사람들이 책을 못 읽게 막았고, 그는 2년간 감옥에 갇혔다. 그는 일하던 언론사와 대학에서 네 번 해직됐고, 모두 5차례 구속됐다.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의 짓이었다. 그는 2000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편치 않은 몸으로도 나라를 걱정했다. "내 책이 한 권도 팔리지 않아 인세가 0원이 되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우상'은 사라지고 '이성'이 살아 숨 쉬기에 그의 책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를 꿈꿨다. 하지만 2010년 그런 사회를 맞지 못한 채 그는 숨을 거뒀다. 2017년도 지나가고 있다. '우상'의 힘은 아직도 세다. 그래서 그의 책을 다시 찾는다. '우상'은 곳곳에서 살아 날뛰고 있다. 온갖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탄핵된 대통령을 아직도 그리워하고, 정부의 돈.기관을 자기 것처럼 주무른 의혹이 있는 지난 대통령을 조사하지 말고 가만히 두라고 한다. '우상'의 힘은 정치색을 가리지 않는다. 이른바 '~빠'라고 자신을 부르거나, 불릴 수 밖에 없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우상'을 세우고 싶어 한다. '~빠'는 세 종류가 있다고 한다. 자신이 '~빠'라고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빠'이지만 절대로 아니라고 부인하거나, 아니면 '~빠'이지만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이성'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성'이 있다면 '우상'을 섬기는 것과 별 다름이 없는 '~빠'는 그만해야 한다. 탄핵 당한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이나, 이번에는 반드시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주먹을 불끈 쥐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우상'을 섬기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이 지켜줘야 할 사람이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 할 의무를 안고 선출.고용된 사람이다. '우상'을 섬기는 두 세력이 사회를 이끌면 '이성'은 숨이 막힌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너무도 오랜 기간 정치를 독점해온 공화.민주 양당은 점점 더 '우상'이 돼가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보다 뛰어난 '우상화 전략'을 펼친 후보가 승리했다. 이기거나 진 쪽 모두 파행과 비리가 드러나고 있다. 특히 최근 알려진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민주당의 뒷거래는 거대 정당들이 벌이는 더러운 '돈 잔치' 선거의 흉측한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클린턴 후보가 후원금을 모아서 일정 부분 민주당에 보태주는 대신 정당을 쥐고 흔들 권력을 가졌다. 공화당은 대놓고 부자들 돈으로 선거를 한다. 민주당은 아닌 척을 하지만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부자들 돈을 끌어 모을 수 있는 클린턴 후보에게 휘둘렸다. 결국 예비선거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정당 조직이 클린턴 편만 들었고, 본선거에서 참담하게 졌다. '공화당 아니면 민주당'이라는 미국 정치의 공식이 깨져야 한다. 한국과 미국에서 거대 정당이 독식하는 '우상 정치'는 선거법 개혁으로 허물어 뜨려야 한다. 그래야 정치에서 '이성'과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우상' 중 하나는 한반도 북쪽에 있다.

2017-11-17

[데스크 칼럼] 총기 규제, 실종된 민주주의

라스베이거스 사건으로 총기 규제가 다시 논란이다. 이번에는 충격이 심했던지 눈곱만큼의 총기 규제에도 언제나 반대해온 공화당과 전미총기협회(NAR)까지 소총 자동화 장치인 '범프스탁' 규제에 찬성한다고 나섰다. 하지만 범프스탁 하나만 판매를 금지한다고 해서 적절한 총기 규제가 이뤄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더 큰 규제 움직임을 막기 위해 공화당과 NRA는 재빨리 범프스탁으로만 규제를 제한하기 위해 나섰을 뿐이다. 신원 조회가 필요 없는 박람회.인터넷 그리고 개인 총기 판매에 규제가 강화돼야 하고, 반자동 총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무기 판매는 전면 금지돼야 한다. 이 밖에도 상당 부분 주정부에 권한을 주고 있는 총기 규제를 연방정부가 더욱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범프스탁은 전체적인 총기 문제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과연 이번에는 정치권이 범프스탁을 넘어서는 더 큰 규제에 성공할 수 있을까?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래야 한다. 미국에는 2억6500만 개의 총기가 있다. 하지만 총기를 가진 성인은 전체의 30%다. 또 전체 가구 중 겨우 3%가 미국 내 모든 총기의 절반을 갖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94%가 모든 총기 구입자의 신원 조회를 지지한다. 공화당원의 93%도 마찬가지로 지지한다. 57%는 총기 구입이 너무 쉽다고 답했고, 35%만 총기 소지가 미국을 더욱 안전하게 만든다고 답했다. 총기 소지자의 30%도 보다 강력한 총기 규제를 원한다. 여론이 이렇게 지지하는데도 왜 총기 규제가 번번히 실패할까? '돈 잔치' 선거 때문이다. 무제한으로 자금을 쓸 수 있는 미국 선거에서 NRA는 가장 '큰 손' 중 하나다. NRA는 박빙의 선거가 펼쳐지는 연방과 지방 선거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후보들을 지지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NRA 대회에서 연설을 했다. 대통령이 NRA 대회에서 연설을 한 것은 무려 34년만이다. NRA는 지난 대선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3000만 달러를 트럼프 선거운동에 쏟아 부었다. 트럼프의 수퍼 정치활동위원회가 2000만 달러를 썼는데 그보다 1000만 달러나 더 쓴 가장 '큰 손'이었다. NRA는 특히 박빙의 승부가 펼쳐진 '스윙 스테이트'에 돈을 집중했다. 그 결과 대통령을 얻었고,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6명을 지지해 1명만 실패하고 5명을 당선시켰다. 2016년 한 해 동안 각종 선거에서 NRA는 109만 달러를 직접 기부했고, 후보 캠페인과 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쓰는 외부 경비로 5439만 달러를 사용했다. 물론 거의 모두 공화당 후보들을 위해 썼다. 또 지난해 로비 비용으로 360만 달러를 썼고, 올해도 벌써 318만 달러를 지출했다. 물론 총기 규제 반대가 주된 활동이다. 이런 NRA의 '돈 잔치'에 정치인들이 저절로 춤을 춘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길을 잃었다. 민주주의가 길을 잃은 가운데 최근 라스베이거스(59명 사망)에서, 플로리다주 올랜도 나이트클럽(2016년.49명)에서, 캘리포니아주 샌버나디노 복지.재활시설(2015년.14명)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흑인 교회(2015년.9명)에서, 커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2012년.26명)에서, 콜로라도주 오로라 영화관(2012년.12명)에서, 애리조나주 투산 정치행사장(2011년.6명)에서, 뉴욕주 빙햄턴 이민자서비스센터(2009년.13명)에서,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버지니아텍(2007년.32명)에서, 그리고 더 멀리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1999년 콜로라도주 콜롬바인고교에서 13명이 목숨을 잃는 등 해마다 희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무섭지 총은 무섭지 않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총 든 사람'은 더 무섭지 않은가?

2017-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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